《Unpin》은 고정되어 있던 것을 변화시키고, 재료의 일반적 쓰임에서 벗어나는 작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진수영은 ‘티드로잉’을 이어가며 재료적 탐구와 영적 세계의 시각화에 집중한다. 금나래는 색을 흡수시키는 방식으로 면천과 아크릴의 물성을 실험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두 작가의 작업은 재료를 실험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각각이 담아내고자 하는 가치에서 차이를 볼 수 있다.
진수영은 직접 차를 우려내어 다양한 색감의 컬러 차트를 만들고, 이를 활용해 종교적 이미지를 그려낸다. 작가가 유학 시절 우연히 시작하게 된 티드로잉은 영적 세계와 인간의 삶을 연결짓는 매개로 기능한다. 수채화처럼 종이에 스민 작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바래고 휘발되는데, 작가는 이러한 ‘티드로잉(Teadrawing)’의 변화를 통해 영적 차원과 인간 삶의 유한함을 사유한다. 특히 화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적 도상은 종교적 함의와 더불어 영적 세계를 시각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으로 기능하고, 구성상으로는 흩뿌려진 찻물 중심에 위치하여 구심점 역할을 한다. 예컨대 <Yellow light with lily>(2025)에서는 뿌려진 찻물과 비교적 뚜렷한 형태의 사다리, 백합이 분리되는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찻물이 겹쳐진다. 여기서 사다리는 그것이 향하는 하늘, 즉 영적 세계를 잇는 상징으로 이해된다.
또 <Breath of life>에서는 뿌려진 찻물과 사람의 실루엣, 그리고 백합이 중첩되어 있는데, 이들은 영적 에너지, 즉 “생기”로 칭하는 작은 점들로 둘러싸여 서로 연결된다. 반면 작은 크기의 드로잉 연작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이미지가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사다리 위의 천사>(2024)나 <푸른 불꽃>(2024)에서는 특유의 종교적 상징물을 볼 수 있다. 한편 차는 동양에서 다도 문화로, 또 명상과 스스로를 돌보는 치유의 맥락으로 이해된다. 진수영의 티드로잉은 직접적으로 치유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품을 구성하는 찻물과 도상은 어긋나는 듯하면서도 동양적 차 문화와 인간생활에서 종교가 갖는 정신적 의미로 느슨하게 연결된다. 수행과 명상이라는 자기승화로서 자연스레 수용되는 이미지를 통해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영적 물음은 치유를 향한다.
금나래는 캔버스 천과 틀을 분리해 작품에서 앞과 뒤라는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일반적인 캔버스 천 대신 물감의 흡수가 더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면천을 선택하여, 뒤집어가며 물감을 덧바르는 과정 자체를 작업의 중심 제재로 삼는다. 여기에 자유롭고 덜 작위적인 붓질로 형상이 되지 못하는 자국을 남긴다.
먼저 <무제>(2022)에서 작가는 일반적으로 이미지를 올리기 위하여 전체적으로 고르게 펴바르는 전처리 과정(젯소칠)을 구역을 나눈 뒤 횟수를 달리하여 칠한다. 이렇게 처리된 젯소는 단순히 밑칠만을 위한 것과는 달리, 덧입혀진 색의 투과가 화면에서 차이를 두고 나타난다. 이는 화면에서 물성의 대비를 이끄는 주요한 시각적 요소가 되고, 여러 번 중첩된 물감은 가장 마지막에 올린 색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스며든 색감으로 드러난다. 앞과 뒤를 의도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천을 ‘물들여’ 재료 자체의 물성을 드러내는 반복적 겹침과 우연적 효과는 결과물의 형성 과정 자체를 작품의 쟁점으로 만든다. 또한 <선과 선 사이>(2024)에서는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높은 농도의 물감 ‘사이’로 스며든 색채를 볼 수 있는데, 작업 과정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고르게 칠해지지 않은 아크릴은 뒤가 앞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며, 결과적으로 재료 실험을 전면화한다.
근작인 <집으로>(2025)에서 이러한 재료 실험의 경향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붙였다 떼어내는 모노타입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시간 차를 두고 떼어낸 이유로 떨어진 자리의 질감이 흡수한 것보다 두드러진다. 이렇듯 작가는 이미지가 완성되기 위한 준비나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물질성과 색감의 변주를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추구한다.
전시 제목인 ‘Unpin’은 고정되지 않은 쓰임을 설명하는 동시에, 두 작가가 실험하는 유동적인 변화와 시간성을 드러낸다. 작품은 전시되는 순간 고착되지만, 그 이후에도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특히 진수영의 작업은 멈추려 해도 재료의 특성상 자동적으로 휘발되는 성격을 가진다. 다시 이미지로 돌아와서, 두 작가의 회화 모두 현실의 어떤 것을 직접 재현하지 않는다. 움직임이나 영적 에너지라는 추상적 가치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이미지에서 정신성과 물질성을 다루는 이들은, 그러나 여전히 현실에 근거한다. 진수영은 현실을 잘 살아내기 위한 영적 치유의 차원에서, 금나래는 이미지 구성의 기초가 되는 재료라는 물질적 차원에서 그렇다.
손하늘